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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육아일기/출산

출산후기



육아과정을 다루기에 앞서 그들이 태어난 그날을 먼저 적는것이 순서다 싶어 6년전 일이지만 이곳에 다시 한번 남깁니다. 6년전 병원에 누워있을때 신랑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인데 가져왔습니다.

2004년 12월 20일!! 일본 요코하마 호리산부인과에서 천사들이 태어났구...그날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반란도 시작되었답니다. ㅠ.ㅠ





이번 출산은 집사람과 함께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2004년 12월 20일 아침 7시15분에 병원에 도착해 입원수속을 밟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집사람과 함께 했습니다.
촉진제를 맞고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 진통으로 회사에 전화를 하고 휴근을 하고 집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려 애쓰면서 분만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3시경에는 자궁문이 7센치정도가 열렸는데 튼튼이(딸의 태명)의 심박수가 100 가까이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는 급히 담당의사인 부원장을 불렀고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고 나와서 저에게 심박수가 100이하로 떨어지면 위험하니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는 간호사들에게 긴급수술준비를 시키더군요.
가슴이 덜컹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힘들어하는 집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면서 계속 등과 허리맛사지를 했습니다.
맛사지를 하는 동안에도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는
‘힘내라,튼튼아. 제발 힘내라…’라고 얼마나 수도 없이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30분정도 지나니 튼튼이의 심박수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5시반정도가 되니 의사가 분만실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분만이 시작되는구나…
분만실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된 옷을 입으면서도 제발 아무탈없이 끝나주기만을 비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분만이 시작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집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나오기 쉽게 하기 위해 음부를 살짝 찢는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어서 미리 찢어놓고 하는줄 알았는데 집사람이 힘을 주고 애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 가위로 음부를 탁 치듯이 찢더군요. 동시에 의사쪽으로 피가 튀었습니다.
그렇게 통통이(아들의 태명)가 나왔습니다.
통통이는 나오자마자 바로 울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추스리며 마지막까지 아무 탈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3분 후 튼튼이가 나왔습니다. 튼튼이는 작아서 생각보다 금새 나왔습니다.
하지만 튼튼이는 나온 후 바로 울지 않더군요.
소아과 전문의가 튼튼이를 바로 안고 옆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처리시설에서 뭔가를 계속 하더군요.
‘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지? 왜 안우는거지?’
초조함이 극에 달할 즈음 튼튼이가 힘겹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출산후 집사람의 자궁안에서 태반을 꺼내고 있던 부원장이 흥겨운 듯 ‘울어라, 그래 울어라’ 하더군요.
다시 한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더군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두아이를 엄마에게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바로 어디론가 데려가더군요.
보통은 출산후 엄마에게 안겨서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집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주질 않고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쌍둥이가 들어있던 자궁안에 태반이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아 의사가 애를 먹고 있었고, 집사람은 출산후에도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의사손에 실과 바늘이 쥐어졌을 때 이제 끝나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산시 출혈이 너무 많았기에 의사는 간호사에게 황급히 투여할 약을 지시하더군요.
남편분은 잠시 나가 계시라는 말을 듣고 집사람에게 너무 고생많았다고 위로하고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데 튼튼이를 받아 치료했던 소아과의사가 오더군요.
비교적 건강한 편이지만 호흡이 약해서 만일을 대비해서 소아과전문병원에 이동을 하게 될거라고 하더군요.
잠시후 집사람에게 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집사람에게 가서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 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 소아과 의사가 다시 와서 설명을 하더군요.
그말을 들은 집사람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조금만 더 뱃속에 데리고 있을걸, 나때문에…"
집사람은 좀더 뱃속에 데리고 있었으면 이런일이 없었을거라고 생각을 하더군요.
"뱃속이 좁아서 애들이 힘들어서 그런거래. 빨리 나와서 그런게 아니야. 애들은 괜찮으니까 걱정마"
이렇게 말하면서도 애들 얼굴조차 보지 못한 집사람은 불안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잠시후 저를 신생아실로 부르더군요.
준비가 되었으니 출발하자고 하더군요.
저는 어이가 없어서, "아직 집사람은 애들 얼굴조차 보지 못했는데 출발하는 겁니까?"
"얼굴이라도 보고 데려가면 안되겠습니까?"
첨에는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제가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의사와 간호원이 몇마디를 주고 받더니
"엄마한테 갑시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애들을 데리고 집사람에게 갔습니다.

집사람은 애기들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출혈도 심하고 남은 힘이 없어서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하더군요.
결국 침대를 높이 올려서 겨우 애들 얼굴이 보일 정도로는 할 수 있었습니다.
애들을 보면 집사람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더군요.
"미안해. 미안해…"
집사람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하더군요.
괜찮다고 안심을 시키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구급차에 함께 탔습니다.
8시즘에 애기들이 입원할 병원에 도착한 후 아빠는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습니다.
10시가 되서야 들어와서 애들을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더군요.
들어가보니 두녀석 모두 따로 인큐베이터안에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통통이는 링겔만 꽂고 있었지만 튼튼이는 입에 호스를 통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손을 소독하고 만져도 된다고 해서 손을 넣어서 만지니 움직이더군요.
"아빠다. 아빠가 옆에 있다…"
내목소리가 들리는지 움직이더군요.
애들과의 면회가 끝나고 담당의사가 현재 애들의 상태를 친절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상태라 한숨 놓을 수 있었습니다.
통통이는 1~2주정도면 퇴원이 가능하고 튼튼이는 그보다는 일주일정도 더 걸릴것같다고 말하더군요.
통통이는 2.6킬로이지만 튼튼이가 2.0킬로라서 몸무게가 작아서 2.3킬로정도가 될때까지는 퇴원하기 힘들거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전혀 없다고 해서 어찌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함께 왔던 구급차는 이미 가버리고 없고 11시즘 병원에서 나온 저는 전철을 타고 다시 집사람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밤12시경이 되더군요.
원래 면회시간은 낮12시부터 9시까지이지만 떠나기전 돌아오겠다고 말해 두었기에 야간벨을 누르고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안되지만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거니와 계속 집사람이 제가 돌아오지 않았냐고 간호사들에게 물으니 오히려 간호사들이 제가 언제 올까 기다리는 판국이 되어 있더군요.
집사람곁으로 와서 애들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면서 안정을 시켰습니다.
큰문제가 없다는 말에 집사람도 안정을 찾더군요.
2시경이 되니 간호사가 이젠 너무 늦었으니 돌아가시는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집사람에게 쉬라고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20일 하루에 일어난 일 치고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힘들때 출산의 그날이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출산을 경험할 많은 분들을 위해 짧게 출산후기를 적어봤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자고 있는 튼튼이(딸)의 모습입니다.
동생 옆에 있는 인큐베이터에서 곤히 잠든 통통이(아들)입니다.